동제당 최원장의 인물노트
갚으려던 남자 — 『에반게리온』 스즈하라 토지

갚으려던 남자 — 『에반게리온』 스즈하라 토지

· 최장혁· 스즈하라 토지
목차

친구 중에 얻어먹는 걸 못 견디는 녀석이 있었다. 밥을 사면 반드시 다음에 커피라도 샀고, 그걸 못 하면 안절부절못했다. 신세를 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장부가 안 맞는 걸 못 견디는 쪽이었다. 받은 게 있으면 갚아야 잠이 오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개 원한도 오래 품지 못한다. 맞으면 그 자리에서 되받아치고, 되받아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미움을 통장에 적립하듯 쌓아두는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서 정산하고 잔액을 0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실은 미움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에반게리온』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정신 상태가 성한 인물을 찾기가 더 어려운 이 작품에서, 드물게 셈이 분명한 소년. 스즈하라 토지. 그는 신지를 주먹으로 때리고, 얼마 뒤 제 손으로 사과하고, 그걸로 정산을 끝낸다. 미움을 오래 들고 있지 못하는 사람. 이 글은 그 짧은 유효기간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 미워하지 못하는 힘 — 니체

토지가 신지를 처음 대하는 방식은 폭력이다. 제 여동생이 신지의 첫 전투 여파로 다쳤다는 걸 알고, 그는 신지를 불러내 때린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것은 때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미움이 얼마나 짧게 끝나는가다. 얼마 뒤 그는 신지가 조종석에서 무엇을 견뎠는지를 보고, 제가 먼저 사과한다. 미움에서 화해까지의 간격이 짧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가른다. 한쪽은 원한을 통장처럼 쌓는 사람이다. 침묵하는 법, 잊어버리지 않는 법, 기다리는 법을 아는 사람. 그의 영혼은 곁눈질을 하고, 그의 정신은 은신처와 뒷문을 좋아한다. 다른 한쪽은 원한이 나타나더라도 곧바로 뒤따르는 반작동으로 그것을 소진해버리는 사람이다. 니체는 이쪽을 두고, 제 적과 재난과 비행(非行)까지도 그렇게 오래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 — 조형하고 치유하고 망각할 수 있는 힘이 넘치는 인간의 표시라고 적었다. 그가 든 예가 미라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한 모욕을 기억하지 못했고, 이미 잊었기에 용서할 것조차 없었던 사람. 니체는 여기 한 문장을 더 얹는다. 진정 적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그런 인간에게서만 가능하다고.

토지의 주먹과 사과 사이의 짧은 간격이 이 문장 위에 얹힌다. 그는 미움을 적립하지 못한다. 맞은 것도, 때린 것도, 그 자리에서 정산하고 잔액을 비운다. 그가 나중에 신지의 목숨을 구해준 상대에게 제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관대함이라기보다, 원한을 오래 들고 있을 그릇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니체의 눈으로 보면 이건 약함이 아니라 힘의 과잉이다.

다만 니체의 독법에는 그가 거의 언급하지 않은 자리가 하나 있다. 그 힘을, 그는 귀족의 것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넘치는 생명력, 지배자의 여유에서 오는 망각. 그런데 토지는 귀족이 아니다. 아픈 여동생을 아버지 대신 간호하고, 병원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소년이다. 니체가 힘의 과잉이라 부른 그 덕이, 정반대의 자리 — 가진 것 없는 자리에서도 나온다면, 그 원인을 다시 물어야 한다. 그 물음을 받는 것은 함경도의 의사다.

갚을 수 있는 회한 — 프로이트

토지가 신지를 때리러 올 때 그는 이상한 말을 한다. 나를 때리라고. 제 잘못 밑에 그은 분명한 선이다. 프로이트가 이 선에 맞는 메모를 하나 남겼다. 회한(remorse)이라는 말은 공격이 실제로 실행된 뒤의 반응에만 써야 한다고, 그리고 회한은 그 자체가 처벌이며 처벌 욕구를 포함한다고. 죄책감은 양심보다도 오래된 것일 수 있다고.

토지의 죄책감은 갚을 수 있는 종류다. 여동생이 다쳤고, 그 원인이 제 머릿속에서 신지였고, 그래서 때리고, 그다음 신지의 두려움을 보고 정정한다. 그의 죄책감도 장부 위에서 돈다. 저지른 잘못, 청구된 처벌, 닫힌 잔액. 해소되는 죄책감이다 — 출구가 있다.

프로이트는 같은 글에서 반대편 극을 가리킨다. 초자아가 세워지고 나면 실행된 공격과 의도된 공격의 차이가 힘을 잃고, 실제로 하지 않고 의도만 한 폭력으로도 죄책감이 생겨난다고. 그 죄책감에는 출구가 없다. 밑에 선을 그을 행위 자체가 없으므로 갚을 수가 없다. 토지는 그로부터 정반대 자리에 있다. 그의 장부는 오직 행위 위에서만 — 준 주먹, 받은 주먹 — 돌고, 행위는 정산할 수 있다. 이것이 갚을 수 있는 경제이고, 이 작품의 다른 소년 하나가 끝내 접근하지 못한 바로 그 경제다. 그 소년은 마지막 자리에 남겨둔다.

청구서 없이 내미는 밥 — 불교

신극장판에서 몇 년 뒤, 토지는 생존자들이 모인 제3마을에서 그곳의 의사로 산다. 말을 잃고 한구석에 쭈그린 신지는 토지가 끓인 죽마저 거부한다. 토지는 그 장부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죽을 내려놓고, 그대로 둔다. 대가를 청구하지 않고,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다.

금강경 제4분은 머무는 바 없는 행(行)이라 불리는 것을 적어둔다. 보살은 마땅히 어떤 법에도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라고 — 형상에 머물지 말고, 소리·냄새·맛·어떤 법에도 머물지 말고. 머묾 없이 보시하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다고. 장부를 남기지 않는 보시다. 토지의 전부는 장부 위에서 돌았다. 되받은 주먹, 갚은 신세, 비운 잔액. 그런데 여기, 장부의 인간이 장부를 남기지 않는 밥그릇 하나를 내려놓는다. 그가 정산을 멈춘 것은 무슨 교리를 배워서가 아니다. 갚을 수 없는, 정산할 행위조차 없는 소년 앞에서는, 장부에 적을 것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방자하지 않은 자리 — 이제마

이제마의 격치고에는 艮이라는 이름이 붙은 잠언이 있고, 그 안에 묘한 목록이 하나 있다. 가난한 자의 마음은 가난하기에 방자하지 않고, 천한 자의 마음은 천하기에 오만하지 않다. 그리고 반대편 극. 방자한 자의 마음은 부유하기에 더 방자해지고, 오만한 자의 마음은 귀하기에 더 오만해진다. 같은 성정이 낮은 자리에서는 한쪽으로, 높은 자리에서는 정반대로 기운다. 사람이 방종하느냐 절제하느냐는 사람보다 그가 놓인 자리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독법이 니체와 교차하며 그를 뒤집는다. 니체는 오래 미워하지 않는 그 힘을 귀족의 과잉으로 돌렸다 — 여유 있는 생명력, 넉넉한 자의 망각. 이제마는 같은 결과를 정반대 끝에서 얻는다. 가난한 자는 가난하기에 방자하지 않고, 부지런한 자는 부지런하기에 방자하지 않다. 사람을 붙드는 것은 과잉이 아니라 자리의 낮음이다. 토지는 미라보가 아니다. 낮은 자리의 부지런한 사람 — 여동생을 간호하고 병원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자다. 니체가 귀족에게만 허락한 덕을, 이제마는 평지의 사람에게 돌려놓는다.

이제마는 그 전복을 경계로 바꾸는 한 문장을 덧붙인다. 천하의 부지런한 사람은 그 몸이 맞지 않으니 방자가 스스로를 치고, 방자한 사람은 제 몸이 스스로를 치는 동안 부지런한 사람은 제 부지런함을 얻는다고. 자리가 일을 한다. 방자한 자리에 놓이면 사람은 방자와 참람으로 증폭되고, 낮은 자리에 놓이면 거기 팔리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나머지에 비추면 이 문장에는 짝이 있다. 겐도가 권세가 증폭시켜 끝내 제게 돌아온 방자한 사람이라면, 토지는 같은 권세가 비껴간 낮은 자리의 부지런한 사람이다. 한 자리는 굳었고, 한 자리는 굳을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 독법도 마지막에 걸린다. 이제마의 잠언은 그침으로 끝난다 — 만족을 알고 그침을 알아 안택(安宅)에 머무는 것. 토지는 신극장판에서 그 그침에 이른다. 마을의 의사, 아내, 아이, 내려놓은 죽 한 그릇. 그런데 그 그침은 자리가 보장해준 것이 아니었다. 모든 장부를 정산하게 해주던 그 경제가, 한 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왼쪽에는 기준선 아래로 내려갔다 곧 되돌아오는 청록 선이 반복되고, 오른쪽에는 오커색 선 하나가 기준선 아래로 떨어진 뒤 되돌아오지 못하고 차콜 입자로 흩어지는 다이어그램

닫히지 못한 장부

정산의 경제가 멈추는 지점이 있다. 신극장판 세 번째 작품에서 토지는 더미플러그로 기동한 3호기 안에서 부서진다 — 사실상, 남의 명령으로 움직인 초호기의 손에. 거기서 그를 부순 것은 갚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勢, 구조의 힘이다. 상대가 없는 損. 상대 없는 손해 앞에서 장부는 무효가 된다. 칠 상대도, 적을 빚도, 비울 잔액도 없다. 모든 것을 정산하던 사람이, 한 번은 정산할 수 없는 것을 만난다.

이것은 그의 잘못도 실패도 아니다. 그의 힘 전부가 갚을 수 있는 경제 — 그 자리에서 모든 장부를 닫는 능력이었다. 그 힘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상대가 있는 곳에서만 작동한다는 것. 장부의 반대편이 얼굴이 아니라 구조일 때, 장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바로 거기, 무효가 된 장부 위에서 신극장판의 죽 한 그릇이 내려진다. 되갚음이 아니다. 더는 맞출 수 없는 장부 위에, 머묾 없이 내미는 보시다.

그래서 나는 이 소년을 앞서 쓴 여자에 비추어 읽는다. 둘은 같은 자리에 선다 — 남의 이끎과 유혹이 나에게 밀려오는 넓고 섞인 場. 그 여자는 거기서 원한을 붙들었고, 가장 큰 미움이 가장 단단한 굳음으로 남았다. 이 소년은 그 자리에서 원한을 흘렸고, 장부가 0으로 닫혔다. 같은 자리, 정반대의 정산. 그것을 가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리가 쥐여준 장부를 각자 어떻게 했느냐다. 하나는 열어두었고, 하나는 닫았다.

나는 얻어먹는 걸 못 견디던 그 친구를 아직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정산하고 잔액을 비우는 데에는 힘이 있다 — 적립된 원한도, 짊어진 것도 없는. 그러나 그 힘은 상대가 있는 곳에서만 성립한다. 어떤 손해는 반대편에 아무도 없고, 그 앞에서 장부는 무효가 되고, 사람은 제가 열지도 않았고 닫을 수도 없는 미정산 계정을 손에 든 채 남는다. 그때 토지가 하는 것은 그의 경제가 처방할 수 없던 것이다. 장부 적기를 멈추고, 밥그릇 하나를 내려놓는 것. 영영 맞출 수 없는 장부 위에 청구서 없이 무언가를 내미는 것 — 그것이 아마, 갚음이 아닌 유일한 갚음이다.

— 최장혁 —


이 인물을 두 사람의 대화로 듣는다.